'우리'외에 변화 아닌 변화

                                    
                                                        시간 나면 음악 들으면서...

                             https://soundcloud.com/origamisound/sets/kitkaliitto-pleasure-disorder








 가운데 사진은 사람들이 거의 다 그림인줄 알더라..(심지어 수십년동안 그림전문가로 활동한 사람마져도 얼핏보고는)

 실은 그저 사진에 효과만 입혔을 뿐인데..

첫번째 사진과 세번째 사진은 전체적으로 아무런 효과도 주지 않았다..(첫번째 가운데 작은 모양빼고)






아름다운 낯선 중년커플의 대화




        "다른 사람들은 절대 못 봐줘도, 자식이기는 부모없대.."
       
        "누가 아니래요?"


 근데.. 젊은이들 피빨아먹고 사는 연장자들을 무작정 욕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도 젊었을때 그런 경험이 있으니.. 보고 배운대로 행할 뿐이지.. 자식들만 어른들 보고 배우나? 어른들은 늙은 사람들은 어린시절도 없었고 젊은 시절도 없었고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적 없나? 젊었을때 혜택을 못받고 자란 연장자가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뭐가 있겠나??? 물론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라는 식의 태도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몸에 배인 관습들은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지겠지만 이미 겪어온 이상 과거의 자신을 닮은 사람을 생산해내기 마련이고 자연히 그때 자신의 입장을 대신하는 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게 관건이겠지..

그런데 정 그러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윗세대에게 되돌려 주면 되지 왜 하필 애먼 보다 젊거나 어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 한풀이 혹은 화풀이하냐! 라고 따지거나 반문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의도가 어떻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원인은 맨윗세대가 그들 바로 아랫세대인 중간세대가 맨윗세대들의 입지를 좁히거나 위협하는걸 막기 위해..즉 맨윗세대가 중간세대를 견제하기 위해 맨아랫세대를 자신들의 방패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아래 아래 세대겠지

그러면 최신세대 역시 희생물 아니었냐라는 의문이 들수 있겠지만 희생은 커녕 오히려 자신의 바로 윗세대인 중간세대가 먼저 받아야했을 혜택을 맨아랫세대인 자신들이 먼저 대신 받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쉽게 말해서, 맨윗세대의 방패역할이 되어주었다는 빌미로 수혜를 입었을 뿐이다. 근데 문제는 그 방패역할조차 허식치레에 불과했다는 점..

왜냐하면 정작 중간세대는 맨윗세대를 외부에서 공격할 힘조차 없이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서 숨통을 조이고 있었으니 맨윗세대를 위한 맨아랫세대의 방패기능은 무용지물이 되어 장식품으로 전락된 셈이다. 덕분에 방패가 되어 이리저리 얻어맞은적 조차 없이 보상차원에서 앞서 대신 이득만 챙긴 셈, 정작 방패의 주인들은 안으로 곪고 있다는 것조차 망각한 채, 그런데?도 최신세대가 애꿎은 존재야?







내가 만약 전생에 '개'였더러면..


 내가 만약 전생에 '개'였더러면..
 
아래 정체성 투쟁이라는 글에서 고양이 위에 있는 강아지랑 똑같이 생긴 개랑 사귀었을 것이 틀림없다

근데 단지 똑같이 생겼을 뿐 똑같은 개는 아니겠지..



사실이 아닌 얘기를 실화처럼 지어낸다고 거짓이 사라지고 언젠가 사실이 되는 게 아니라..
사실이 아닌 꿈일 뿐이라도 그에 걸맞는 노력과 희생을 감내한다면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일 뿐디ㅏ.




사라진 거짓은 진실이 되어 돌아온다


 너는 사탕발린 그 말들을 무시하면서도 내심 좋아했을까..?

무시가 아니었다고? 무시가 아니라도 너가 되받아치지 못했던건 너를 외면하더라도 넌 할 말 없지..
넌 상처받기 싫어서 미리 보호막 친거니까..
상처받을 이유 없이 어딘가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 그건 주제넘은 욕심에 불과해..

사회성이 좋아도 마음 속 깊이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들..
즉, 자기자신을 방어하는데 애쓰는 사람들은 대게 덜 친절하거나 개개인에게 맞춰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겸손이란 빌미로 우습게 여겨지거나 알게 모르게 비웃음 사는 것 보다 차라리 오만하게 보이는걸 택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러기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거다..
왜냐하면 아무리 속마음을 감춰도 감춰지지 않는 건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뭔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뭔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적절히 노력한다면.. 너의 편의를 떠나 너가 잡고 싶었던 상대에게 맞춰주려 한다면.. 넌 응당한 가치가 있다.


 '사라진 거짓은 언젠가 결국 진실이 되어 돌아온다'






'자유'는 '고립'의 또 다른 말이다.


  뭐가 옳고 그른지 혹은 뭐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눈 똑바로 뜨고 판단해야 한다. 다른 걸 덮어놓고 혹은 젖혀놓고 넘어가기만 하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똑바로 볼 것이 아니라 전부 똑바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어느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대충 보는 게 아니다. 모두 똑똑히 확인하고서 그 중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빗나갈 여지조차 남기면 안된다. 안 그러면 당장은 탈이 없을 수 있어도 갈수록 어딘가 빗나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건 사람과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볍지만은 않다..

정확히 말해서… 단순히 자신이 어떤 대상을 선택했다 안 했다의 여부를 따지기 전에 적어도 자기자신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어떠한 대상들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견해에 따라서 대상에 대한 의미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자신에게부터 솔직해져야 한다. 그래야 남들도 정당하게 대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객관성도 주관성으로 비롯된 것이다.

만일 어떤 대상들이 뭔가 좋은 점이 있는 거 라면 왜 모른 척 하는가? 정말 당신에게 맞는 건 따로 있어서?? 따로 볼 필요도 없이 그것들 자체가 괜찮은 거라기보다는 당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그것들은 괜찮은 것인데 원인과 책임을 누구한테 떠넘기려는가?

모두 제대로 보고서 좋은지 아닌지 가리는 거지.. 안봐도 좋은게 있다면 왜 안보냐는 것이다.. 그것도 빗나간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른 거 다 똑바로 보고도 이끌리지 않는다면 비로소 정말 자신에게 맞는 길은 따로 있는 것이고 최선을 선택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목표나 목적지가 명확하더라도 차선이 최선을 혹은 최선이 차선을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어떠한 방식으로도 묻으려 한다면 그건 최선도 차선도 선택되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최선과 차선은 액면적으로 다른 듯 해도 동일한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주장이 진퇴양난에 몰아넣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최선과 차선이 뒤섞여버린 선택권을 몽땅 포기하라. 혼자만이 답이다.

너무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다고 여겨지는가? 자유로움은 좋은 것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움에 정확성과 엄격성이 결부될 때만 한해서 의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이야 말로 모든 인간을 포함한 생물에게 무의식 중 고립성의 가치를 가르치고 있는지 모른다.



Britney Spears - Me Against The Music ft. Madonna


僕はいない(Dance Short ver.) / NMB48[公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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